밤 9시, 아기를 재우기 시작합니다. 조명을 끄려는데 아기가 울어요. 살짝만 껴안아도 몸을 뒤틀며 불편해합니다. 겨우 잠들었다 싶어 침대에 내려놓으면 그 순간 눈을 뜹니다. 옷 태그, 이불 소재, 창밖 자동차 소리… 모든 게 문제입니다.
“우리 아기만 이렇게 예민한가요?”
55%의 아기, 그리고 한 가지 질문
2015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Mark Vasak 연구팀은 수면 클리닉을 찾아온 177명의 영유아를 분석했습니다. 평균 연령은 18.5개월. 부모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왔습니다.
“우리 아기는 왜 이렇게 잠들기 어려울까요?”
연구팀은 Infant/Toddler Sensory Profile이라는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부모가 작성하는 설문 형식으로, 아기가 일상에서 빛, 소리, 촉감 같은 감각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평가하는 검사입니다. 이미 수집된 차트를 후향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55%의 아기
연구 결과는 많은 부모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55%의 아기가 한 개 이상 영역에서 높은 감각처리 패턴을 보였습니다.
여러분의 아기만 유독 예민한 게 아니었습니다. 절반이 넘는 아기들이 어떤 형태로든 감각 자극에 독특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55%의 아기가 한 개 이상 영역에서 감각처리 패턴의 증가를 보였습니다. 이 중에서
- 감각민감형이 가장 흔했고 (Sensory Sensitivity): 36%
- 감각추구형도 많았으며 (Sensation Seeking): 31%
- 감각 둔감형도 있었습니다 (Low Registration): 20%
※ 한 아기가 여러 유형을 동시에 보일 수 있어서 비율은 중복됩니다
수면과의 연결고리
연구팀은 이 감각처리 패턴과 수면의 관계도 분석했습니다.
발견된 상관관계
- 감각민감성 ↔ 잠들기 시간: r=.27 (p<.001)
- 감각추구 ↔ 낮잠 시간: r=-.24 (p=.002)
감각민감성이 높은 아기일수록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반대로 감각추구 성향이 높은 아기들은 낮잠 시간이 짧았습니다. 더 많은 자극을 원해서 잠들기를 거부하거나, 짧게 자고 일어나 다시 활동하려는 경향을 보였던 것입니다.
r=.27, 이 숫자의 진짜 의미
여기서 잠깐, 통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r=.27이라는 상관계수가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요?
통계학에서 r=.27은 약한 상관관계로 분류됩니다. 실생활로 계산하면 약 7%(r² = 0.07)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쉽게 설명해볼게요.
감각민감성이 아기가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에 영향을 주긴 합니다. 하지만 전체의 7%에 대해서만 연관이 있다는 뜻입니다. 나머지 93%는 다른 요인들에 영향을 받습니다.
- 아기의 기질
- 건강 상태
- 낮 동안의 활동량
- 부모의 컨디션과 스트레스
- 수면 환경
- 낮잠 타이밍
- 배고픔이나 불편함
- 발달 단계의 변화
- 날씨와 계절
- 그날의 특별한 사건들…
수많은 변수들이 함께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7%는 무의미할까요? 아닙니다. 7%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입니다. 특히 매일 밤 반복되는 수면에서 7%의 영향은 시간이 쌓이면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연구의 한계 – 연구자들도 솔직하게 인정한 것
Vasak 연구팀은 논문에서 자신들의 연구가 가진 한계를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런 정직함이야말로 좋은 연구의 표식입니다.
⚠️ 한계 1: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
가장 큰 한계입니다. 이 연구는 횡단면 연구(cross-sectional study)입니다. 한 시점에서 여러 아기를 관찰한 것이죠.
세 가지 시나리오가 모두 가능합니다
- 시나리오 A: 감각민감성 → 수면 문제
- 시나리오 B: 수면 문제 → 감각민감성 악화
- 시나리오 C: 제3의 요인 → 감각민감성 + 수면 문제
어느 것이 맞는지 이 연구로는 알 수 없습니다. 연구자들도 논문에서 “which limits conclusions about causality”라고 명확히 인정했습니다.
⚠️ 한계 2: 선택 편향
이 연구는 수면 클리닉을 방문한 아기들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이미 수면 문제가 심각해서 병원을 찾은 가족들이죠.
질문: 수면에 문제가 없는 일반 아기들은 어떨까요? 일반 인구에서도 55%가 감각민감성을 보일까요?
답: 이 연구로는 알 수 없습니다.
⚠️ 한계 3: 측정의 주관성
Sensory Profile은 부모가 작성하는 설문지입니다. 실험실에서 아기의 감각 반응을 직접 측정한 게 아닙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수면 문제로 지친 부모는 아기를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밤새 깨서 울어대는 아기를 보며 “우리 아기는 정말 민감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판단이 얼마나 객관적일까요?
부모의 주관적 인식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연구가 부모에게 말하는 것
그렇다면 이 연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이 연구가 말하는 것
✓ 당신의 아기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 55%의 아기가 감각민감성을 보입니다
- 당신만 힘든 게 아닙니다
✓ 감각민감성과 수면 문제는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이 존재합니다
- 무시할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 하지만 그 관련성은 생각보다 약합니다
- 7%의 설명력
- 다른 많은 요인들도 중요합니다
이 연구가 말하지 않는 것
✗ 감각민감성이 수면 문제의 원인이다
- 인과관계는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 방향성을 알 수 없습니다
✗ 감각민감성만 해결하면 잠을 잘 잘 것이다
- 7%만 설명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 종합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 이것이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 55%가 보이는 특성입니다
- “문제”가 아닌 “개인차”일 수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
177명의 아기를 관찰한 이 연구는 중요한 스냅샷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한 시점의 사진일 뿐입니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18개월의 감각민감한 아기가 4살이 되면 어떻게 될까?”
“이 패턴이 시간이 지나도 지속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같은 아이들을 여러 해 동안 추적하는 종단 연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그 연구 결과가 발표됩니다.
다음 편 예고: “그리고 4년이 흘렀습니다”
생후 6개월부터 4세까지. 시간을 따라 추적한 연구는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18개월의 수면 패턴이 정말 4세를 예측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부모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2편에서 계속됩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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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예민 아기와 수면 시리즈
📖 1편: 177명의 아기가 알려준 것 (현재 글)
📖 2편: 그리고 4년이 흘렀습니다
📖 3편: 과학이 말하는 것, 말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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