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취침, 8시 기상, 왜 안되나요? – 내부 시계 충돌

지난 편에서 밤 10시 성장호르몬 신화를 다뤘습니다. 늦게 자도 성장호르몬은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늦게 자도 키는 문제 없이 큽니다. 그런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아이가 짜증을 더 많이 내고, 감정 조절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우리 몸속에서 벌어지는 ‘시계 전쟁’에 있습니다.

밤 11시 취침, 아침 8시 기상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

“1편을 읽고 안심했어요. 그럼 밤 11시에 재우고 아침 8시에 일어나도 된다는 건가요?”

많은 부모들이 내심 이런 늦잠 스케줄을 원합니다. 저녁 시간에는 여유가 생기고, 아침시간도 쫓기지 않으니까요. 성장호르몬도 밤잠시간에 맞춰서 잘 나온다고 했으니, 늦잠 일과로 진행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아이는 늦잠을 자며 충분히 잤는데도, 개운한 모습이 아닙니다. 아침마다 칭얼거립니다. 낮에도 예민합니다. 밤에는 또 잠들기 힘들어 하며 잠자는 시간이 점점 늦어집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수면의 질은 성장호르몬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멜라토닌 시계, 코르티솔 시계, 체온 리듬 시계, 장기의 대사 시계까지 모든 시계가 조화를 이루어야 아이가 개운하게 잘 수 있습니다.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이 시계들의 성격이 전부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몸속 호르몬들, 각자 다른 출퇴근 시간표

우리 몸속 호르몬을 회사로 비유해보겠습니다.

성장호르몬 = 유연한 직원 잠드는 시간에 맞춰 출근합니다. 10시에 잠들면 10시 반에 일을 시작하고, 12시에 잠들면 12시 반에 일을 시작합니다. 매우 융통성이 있습니다.

멜라토닌 = 설득 가능한 팀장 빛에 민감합니다. 조명을 늦게까지 켜두면 “아직 낮이구나” 속고 출근 시간을 뒤로 미룹니다. 설득이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코르티솔 = 고집 센 관리자 새벽 3-4시부터 출근 준비를 시작합니다. 부모가 몇 시에 아이를 재우든 상관없습니다. 지구의 자전 주기에 결합되어 있어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각성 호르몬이기 때문에 깊은 잠을 방해합니다.

체온 리듬과 장기 시계 = 불굴의 현장 책임자 심부 체온, 간의 대사 리듬은 매우 고집스럽습니다. 오랜 기간 형성된 습관과 지구의 자전 주기에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설득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두 가지 스케줄, 완전히 다른 결과

밤 11시에 아이를 재우면 몸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11시에 잠들면 성장호르몬은 11시 반경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멜라토닌은 늦게까지 조명에 노출되어 분비 시점이 10시쯤으로 밀려납니다. 분비량도 줄어듭니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유연한 직원들이 야근 모드로 일합니다.

그런데 새벽 4시가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코르티솔이 출근합니다. 각성 호르몬이기 때문에 깊은 잠을 방해합니다. 심부 체온도 4-5시경부터 상승을 시작합니다. 간과 소화기는 아침 모드로 전환합니다.

뇌는 겨우 야근 중인데 몸은 이미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연한 직원들은 야근 중인데 고집 센 관리자들은 퇴근 준비 중입니다. 이것이 내부 시계 충돌입니다.

Case A. 생체 리듬에 최적화된 스케줄

오전 6시 기상. 호르몬 리듬과 기상 시간이 일치하는 이상적 상태입니다.

Case A. 생체 리듬에 최적화된 스케줄 오전 6시 기상 | 호르몬 리듬과 기상 시간이 일치하는 이상적 상태 수면 (20:30-06:00) 12:00 18:00 24:00 06:00 기상 12:00 멜라토닌 코르티솔 체온 ⓒ 2026. My Little Dreamer. All rights reserved.
  • 멜라토닌은 밤 9시경 최고조
  • 코르티솔은 새벽 4시부터 상승하지만 이미 충분한 서파수면 확보
  • 체온은 새벽 4-5시 최저점 후 상승

Case B. 리듬 불일치 – 내부 시계 충돌

멜라토닌은 밀렸지만 코르티솔은 여전히 6시 기상 리듬에 고정된 상태입니다.

Case B. 리듬 불일치 (내부 시계 충돌) 멜라토닌은 밀렸지만, 코르티솔은 여전히 6시 기상 리듬에 고정된 상태 수면 (23:00-08:00) 충돌! 코르티솔 피크 몸은 이미 기상 신호 중 12:00 24:00 06:00 08:00 기상 멜라토닌(지연) 코르티솔(고정) 체온 ⓒ 2026. My Little Dreamer. All rights reserved.
  • 멜라토닌 분비는 지연되었지만
  • 코르티솔은 여전히 새벽 4시부터 상승
  • 충돌! 코르티솔 피크 시간에 몸은 이미 기상 신호 중

멜라토닌의 손실 – 화학적 청소 시간 부족

멜라토닌은 보통 밤 9시경 최고조로 분비됩니다. 이 호르몬은 단순히 졸리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숙면을 유도하고 뇌에서 화학적 청소를 담당합니다.

밤 11시에 재우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 9시경 최고조로 분비되었어야 할 멜라토닌의 혜택을 놓치게 됩니다. 멜라토닌은 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조명을 늦게까지 켜두면 분비 시점이 뒤로 밀립니다. 하지만 분비량 자체는 줄어들고 깊은 숙면 시간도 단축됩니다.

결과적으로 뇌의 화학적 청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낮 동안 쌓인 노폐물이 충분히 배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르티솔의 방해

코르티솔은 새벽 4시부터 이미 엔진 가열을 시작합니다. 엔진이 돌아가는데 억지로 차를 세워두면 엔진에 무리가 가듯, 아이도 이 시기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칭얼거리며 자주 깨게 됩니다.

성장호르몬은 분명히 나옵니다. 하지만 코르티솔은 각성 호르몬입니다. 깊은 잠을 방해합니다. 코르티솔이 낮은 청정 구역에서 깊은 잠을 잘 구간을 놓치게 됩니다. 코르티솔이 상승하는 시간대에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서파 수면의 총 시간이 물리적으로 단축됩니다. 이 시간이 단축되면 뇌의 노폐물 제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수면 압력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래도 늦게 자면 수면 압력이 높아져서 더 깊이 자지 않나요?”

맞습니다. 늦게 자면 수면 압력(아데노신)이 높아져 첫 서파 수면은 강렬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몸이 서파 수면을 몰아서 내보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장호르몬은 단 한 번의 깊은 잠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밤새 이어지는 수면 사이클 중 초반 2-3번의 서파 수면 구간에서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문제는 유연한 성장호르몬과 달리, 새벽 3-4시부터 상승하는 코르티솔이 매우 고집스럽다는데 있습니다. 서파수면을 몰아서 내보내는 시간과 강제 기상 알람 코르티솔이 함께 만나게 되는 것이죠. 수면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체온 리듬의 불협화음

심부 체온은 코르티솔보다도 더 고집스럽습니다. 체온은 새벽 4-5시에 최저점을 찍고 상승해야 숙면이 가능합니다.

늦게 잠들어서 잠든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체온이 올라가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숙면이 불가능해집니다. 마치 엔진도 안 돌았는데 시동을 걸거나, 차가 달리고 있는데 엔진은 끄려고 하는 상태와 같습니다.

체온 리듬은 내부 장기의 대사 기능을 지원합니다. 간은 밤에 해독 작업을 하고, 소화기는 휴식을 취합니다. 이 모든 것이 체온 리듬과 맞물려 돌아갑니다. 취침 시간이 뒤로 미뤄지면, 이 정교한 시스템이 엇박자를 냅니다. 교대근무자와 심야근무자 연구에서도 서파수면량은 비슷했지만, 대사 기능 등의 건강 문제가 발견되었던 원인입니다.

신체 시계는 24.2시간

어른의 스케줄에 아이를 맞추는 것은 아이에게 매일 시차 부적응을 겪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신체 시계는 24.2시간입니다. 지구의 자전 주기인 24시간보다 약간 깁니다. 아침에 햇빛으로 시계를 맞춰주지 않으면 자연히 뒤로 밀리게 되어 있습니다.

밤 11시에 잠들면 어떻게 될까요? 수면량을 채우려고, 새벽에 뒤척이더라도 아침 8시까지는 자게 됩니다. 문제는 아침 햇빛을 받는 시간이 늦어져서 시계가 더 뒤로 밀린다는데 있습니다. 일주기리듬이 어긋났으니, 밤 11시에도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그렇게 잠드는 시간은 11시 반, 12시로 계속 밀립니다.

기상 시간을 억지로 뒤로 미루는 것보다 아이의 생체 시계인 6-7시에 맞춰 일찍 깨고 일찍 자는 것이 훨씬 질 높은 수면을 보장합니다. 모든 호르몬 시계들이 조화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늦은 취침에 신체 내부에서는

정리하겠습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생체 리듬과 어긋난 수면의 문제점 늦은 취침과 불규칙한 패턴이 아이에게 미치는 5가지 영향 1 서파수면 총 시간 단축 뇌척수액의 ‘물리적 청소’ 시간 부족 및 뇌 회복 저하 2 멜라토닌 혜택 감소 항산화 작용 저하로 뇌의 ‘화학적 청소’ 실패 3 각성 호르몬(코르티솔)과의 전쟁 코르티솔 상승 구간 수면 → 아침 짜증, 감정 조절 어려움 4 체온 리듬의 엇박자 장기 대사 기능 저하, 간 해독 및 소화기 휴식 불충분 5 사회적 시차(Social Jetlag) 누적 매일 시차 부적응을 겪는 상태 반복 (만성 피로) ⓒ 2026. My Little Dreamer. All rights reserved.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아이가 밤 10시에 자고 아침 8시에 일어나길 원하는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부모에게도 저녁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아침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준비하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몸은 생각보다 고집스럽습니다. 멜라토닌은 빛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코르티솔과 체온 리듬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지구의 자전 주기에 맞춰 진화해온 시계들이니까요.

지난 편에서 말씀드렸듯이, 밤 10시라는 숫자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취침시간이 8시냐 9시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1시간 차이나는 것도 괜찮습니다. 성장호르몬은 취침시간과 크게 상관없어요.

다만 11시, 12시 취침이 습관이 되면 그때는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 몸속에서 매일 시계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충분히 잤는데도 개운해하지 않습니다.

혹시 지금 이 모습이 우리 아이와 비슷하다면, 오늘부터 작은 변화를 시도해보세요.

먼저 아침 기상시간을 30분 앞당기세요. 일주일 정도 기상시간이 자리 잡으면 그때 취침시간을 사흘에 15분씩 천천히 앞당기세요. 당장 내일 아침이 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2-3주 후에는 분명히 달라져 있을 거예요. 호르몬 시계가 조화롭게 작동하게 되면, 아이는 아침에 웃으며 일어나고, 낮에 덜 칭얼거리며, 밤에 더 쉽게 잠들게 될 거예요.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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