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던 우리 아이가 요즘 재우기가 너무 힘들어요. 잠들기 전에는 울면서 안아달라고 보채고, 밤에도 자주 깨서 우는 일이 많아졌어요.”
15개월~24개월 무렵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이 자주 경험하는 고민입니다. 낮에는 혼자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아이가 밤만 되면 안아달라고 보채서 힘들다는 고민을 토로하곤 합니다. 낮에는 엄마 손을 뿌리치고 뛰어가던 아이가 밤만 되면 세상이 무너진 듯 울며 매달립니다. 부모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워집니다.
걱정마세요, 우리 아이만 유별난 것이 아니니까요. 심리학과 뇌과학의 관점으로 보면, 아이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독립의 과정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립과 의존의 양가감정 (마가렛 말러)
엄마, 잠드는 건 무서운 이별이에요
20세기 아동 심리학의 선구자 마가렛 말러(Margaret Mahler)는 이 시기를 재접근기(Rapprochement phase)라고 정의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 아이들은 자신이 엄마와는 다른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거대한 줄다리기가 벌어집니다.
이 시기 아이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낮에는 세상을 탐험하고 싶은 독립의 욕구가 앞서지만, 밤이 되어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영영 이별할 것 같은 분리의 공포가 엄습하는 것이죠.
아이들에게 밤은 낮 동안 겪은 수많은 감정과 경험을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아직 이별을 이해하거나 스스로 다룰 준비가 되지 않은 재접근기 아이는 엄마가 곁에 없는 어둠 속에서 자신이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수면은 본질적으로 부모와 잠시동안 이별하는 상황이기에 아이는 잠드는 순간에 강렬한 분리를 인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들기 직전에는 부모와의 연결을 확인하려는 본능이 강하게 발휘됩니다. 낮 동안 잠재되어있던 분리 불안이 하루 중 가장 큰 이별의 순간인 수면 시간에 폭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의 잠투정은 떼쓰기가 아니라 심리적 줄다리기의 결과물인 것이죠.
엄마는 나의 생물학적 진통제 (메간 군나르)
그렇다면 아이는 왜 밤중에 자꾸 깨서 엄마를 확인하려 할까요? 이 시기 아이들의 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접근기 아이의 뇌는 수면 중에도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깨지 않던 수면 주기에도 작은 자극에 쉽게 깹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부모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고, 자신의 안전을 점검하는 것이죠.
미네소타 대학의 뇌과학자 메간 군나르 박사의 1996년 연구에서 아이들의 행동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메간 군나르 박사는 18개월 유아를 대상으로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연구팀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안정 애착을 형성한 엄마가 곁에서 민감하게 반응해 주면 같은 공포 상황에서도 아기의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사회적 완충 효과’라고 불렀습니다. 양육자의 존재가 아이의 뇌로 쏟아지는 스트레스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생물학적 방패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밤에 깨서 우는 아이를 부모가 달래는 행동은 아이의 뇌가 스트레스에 잠식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신경생물학적 처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거부가 아닌 전략적 협상 (조디 민델)
재접근기는 자려고 누우면 그때서야 물을 달라거나 책을 더 읽어달라는 등 온갖 요구를 쏟아내는 아이 때문에 힘들어 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소아 수면 권위자 조디 민델 박사팀의 2025년 최신 연구는 이 행동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합니다.
연구팀이 12개월에서 36개월 유아들의 취침 저항 양상을 분석한 결과, 월령에 따라 취침 저항의 질은 달라졌습니다. 12개월에서 23개월까지는 울음과 같은 신체적 저항이 주를 이루었으나, 24개월이 넘어서면 울음은 감소하고 부모를 다시 부르는 구체적인 요구 행동이 주된 패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연구진은 이 행동이 문제가 심해진 게 아니라 인지와 언어 능력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무작정 우는 대신 자기 몸 상태를 알아차리고 말로 표현하게 된 겁니다. 거기에 부모와 타협을 시도하는 전략적 사고까지 생겼고요. 부모 눈에는 그저 떼쓰기로 보이는 행동이지만, 아이가 사회적 협상가로 성장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긍정적 증거로 해석해야 합니다.
민델 박사는 지능의 폭발적 성장이라고 표현합니다.
- 자기 인식: “나, 목말라” (내 몸 상태를 알아차림)
- 욕구의 언어화: 울음 대신 말로 표현함 (표현 능력 발달)
- 전략적 사고: 엄마가 들어줄 만한 제안을 함 (협상 시도)
아이는 지금 잠투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타협하는 고도의 사회적 기술을 연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
오늘 밤 아이가 또다시 안아달라고 보채더라도 자책하지 마세요. 뇌과학과 심리학의 데이터가 말해주듯, 아이는 지금 본능적으로 뇌를 보호받으려 하고 소통 방식을 정교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힘겨운 시기는 퇴행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필수 관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특하고도 힘겨운 시기, 부모는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Margaret Mahler – Jewish Women’s Archive https://jwa.org/encyclopedia/article/mahler-marga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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