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61.3%의 유아가 취침 저항을 보인다는 것을 전해드렸죠? 즉 유아 둘 중 한명은 취침거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아들은 취침 거부를 할까요?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취침 루틴이 시작됩니다. 이 닦고, 잠옷 입고, 책 읽고.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했는데, 정작 아이는 “자기 싫어”를 외칩니다. 침대에 누우면 몸을 뒤척이고, 일어나려 하고, “물 마실래”, “화장실 갈래”, “책 한 권만 더”를 반복합니다.
부모는 생각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루틴이 부족한가?’ ‘더 일찍 재워야 하나?’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합니다. 바로 아이의 몸이 아직 잠들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사실이죠.
멜라토닌 분비는 취침 2시간 전
우리 몸에는 ‘잠들 시간’을 알려주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뇌의 송과선에서 멜라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하고, 이 호르몬이 우리 몸에 “이제 쉴 시간이야”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성인은 이 신호를 알아차리고 ‘아, 졸리네’ 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하지만 유아는 다릅니다. 유아는 자기 몸의 신호를 아직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취침 시간을 선택할 권한이 없습니다. 부모가 정하니까요.
과학자들은 멜라토닌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시점을 DLMO(Dim Light Melatonin Onset, 희미한 빛 하의 멜라토닌 분비 시작)라고 부릅니다. 이 시점이 바로 우리 몸의 ‘생물학적 밤’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성인은 평균적으로 DLMO 후 약 2시간 뒤에 잠자리에 듭니다. 몸이 충분히 준비된 후에 눕는 거죠. 그런데 유아는 어떨까요?
2013년, 유아 생체시계 첫 측정
콜로라도 대학 통합생리학과 Monique LeBourgeois 박사 연구팀이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부모가 정한 취침 시간이 아이의 생체시계와 맞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연구팀은 30-36개월 유아 45명을 대상으로 정밀한 관찰을 진행했습니다. 5일 동안 아이들의 수면을 추적하고, 6일째 되는 날 저녁, 집에서 6시간 동안 30분마다 아이들의 침을 채취해 멜라토닌 수치를 측정했습니다.
평균적으로 유아의 DLMO는 부모가 정한 취침 시간보다 47.8분 전에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잠드는 시간보다는 74.6분이나 앞서 있었죠.
DLMO와 취침 시간 사이의 간격이 좁은 아이들, 즉 멜라토닌이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침대에 눕게 된 아이들은 잠드는 데 더 오래 걸렸고, 부모들은 더 많은 취침 저항을 보고했습니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DLMO가 늦은 아이일수록 취침 시간, 잠드는 시간, 한밤중 시간, 기상 시간이 모두 늦었다는 겁니다. 아이마다 생체시계가 다르다는 뜻이죠.
5명 중 1명(20%)은 멜라토닌이 전혀 분비되기도 전에 침대에 눕혀진 것으로 나왔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생물학적 밤이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잠들라고 요구받은 것입니다. 이건 한여름 대낮에 “지금 자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자기 싫어”의 진짜 의미
연구는 아이의 “자기 싫어”라는 말이 반항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몸이 아직 생물학적으로 잠들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는 것이죠.
누군가에게 대낮부터 “지금 자라”는 말을 들으면 어떨까요? 아무리 침대가 편하고 조용해도 잠들기 어렵겠죠. 멜라토닌이 분비되지 않는 시간이니까요.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멜라토닌이 충분히 분비되기 전에 잠자리에 누우면, 아무리 피곤해도 몸이 ‘수면 모드’로 전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뒤척이고, 일어나려 하고, 무언가를 요구하게 됩니다. ‘말썽’이 아니라 ‘생리적 각성’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너무 이른 취침은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아이는 침대에서 더 오래 깨어 있게 되고, 부모는 점점 지치고, 취침 시간이 전쟁터가 됩니다. 그러면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거죠.
연구의 한계
이 연구는 쉽지 않았습니다. 78가족을 스크리닝했지만 엄격한 기준(규칙적 낮잠, 안정적 일과, 주중-주말 차이 2시간 이내 등)을 충족한 건 32가족뿐이었습니다. 그중 16가족이 참여에 동의했고, 최종 14가족이 완료했습니다.
측정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집 안을 10 lux 미만의 희미한 빛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창문을 검은 플라스틱으로 덮고, 조광기와 저와트 전구를 사용했습니다. 6시간 동안 30분마다 아이의 침을 채취했죠. 샘플당 약 1만 5천원, 총 12개 샘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습니다.
LeBourgeois 박사는 2013년 14명으로 시작해 같은 해 45명으로 확장했고, 2015년 낮잠 연구, 2017년 빛 노출 연구로 이어갔습니다. 15년 넘게 실험실이 아닌 가정에서, 아이가 편안한 환경에서 실제 생활을 측정하는 방법을 통해, 약 250명의 아이들을 연구하였습니다.
LeBourgeois 박사는 말합니다. “모든 아이의 멜라토닌 수치를 평가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취침을 거부하거나 잠드는 데 문제가 있다면, 그 시간에 생리적으로 수면 준비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멜라토닌 측정 없이 생체시계 알아보기
우리가 집에서 멜라토닌을 측정할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전문가도 어렵다고 하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첫째, 아이마다 생체시계가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세요. ‘다른 집 아이는 7시에 잔다더라’는 우리 아이와 관계없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 둘째, 아이의 신호를 관찰하세요. 멜라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하면 아이 몸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합니다. 움직임이 느려지고 놀던 것에 흥미를 잃습니다. 보챔이 증가하거나, 반대로 갑자기 조용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신호들이 나타나는 시간대를 며칠 동안 관찰해보세요.
- 셋째, 취침 시간을 조정해보세요. 만약 매일 8시에 재우려고 하는데 아이가 9시가 되어야 잠드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취침 루틴 시작을 8시 30분으로 조정해보는 겁니다. 생체시계에 맞춰주는 거죠.
- 넷째, 일관성을 유지하세요. 한번 시간을 정했으면 며칠은 같은 시간을 유지해보세요. 몸이 패턴을 학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 다섯째, 환경을 조절하세요. 저녁 시간대에 밝은 조명을 피하고, 차분한 활동을 하고, 스크린을 멀리하세요. 이런 것들이 멜라토닌 분비를 도와줍니다.
완벽보다 방향: 관찰의 가치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럼 정확히 몇 시에 재워야 하는 거죠?’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아이마다 생체시계가 다르고, 낮 활동량이 다르고, 낮잠 패턴이 다르고, 발달 속도가 다릅니다. 중요한 건 정확한 시간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우리 아이의 신호를 관찰하고, 생체시계를 존중하고, 무리하게 너무 이른 취침을 강요하지 않는 것. 동시에 너무 늦어져서 과각성 상태가 되는 것도 피하는 것.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 아이만의 적정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을 찾는 과정에서 몇 주는 걸릴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이 몸도 매일 변하고 있으니까요.
다음 이야기
생체시계를 존중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요?
다음 편에서는 취침 저항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를 다룰 예정입니다. 바로 환경입니다. 스크린, 빛, 소리, 온도. 이 모든 것들이 아이의 멜라토닌 분비와 수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봅니다.
참고문헌
LeBourgeois et al. (2013) – Journal of Biological Rhythms
Two Simple Ways to Help Children Sleep Bett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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