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시계를 맞췄는데도 잠드는데 오래 걸려요
2편에서 우리는 아이마다 생체시계가 다르고, DLMO(멜라토닌 분비 시작 시간)가 최대 3.5시간 차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아이의 실제 밤잠시간은 부모가 정한 8시가 아니라, 아이의 생체시계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아이의 잠신호를 체크하고, 적정한 생체시계이라고 추측한 8시 30분에 눕혀봅니다. 엇, 그런데도 잠드는데 여전히 1시간씩 걸리네요?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수면에서 생체시계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생체시계가 잘 시간을 말해도, 수면환경이 아직 놀 시간이라고 말하면 아기는 잠들 수 없습니다.
감각 과부하라는 또 다른 방해요인
2015년 캐나다 연구에 따르면 55%의 아기가 감각민감성을 보입니다. 절반이 넘는 아기들이 빛, 소리, 촉감 같은 감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4개월 무렵부터 수면방추 뇌파가 발달하면서 외부 자극에 대한 민감도가 크게 증가합니다. 뇌의 신경망이 성숙해지면서 세상의 모든 소리와 빛, 감촉을 더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는 거죠.
문제는 아기는 민감해지고 똑똑해지는데, 감각을 조절하는 능력은 아직 미숙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조명이 조금만 밝아도, 작은 소리에도, 이불이 살짝 불편해도 쉽게 각성됩니다. 생체시계가 잘 시간이라고 신호를 보내도, 감각 시스템이 각성시간이라고 반응하면 잠들기 어렵습니다.
💡 참고: 감각민감 아기의 유형별 대처법이 궁금하다면?
👉 감각민감 아기 재우기: 4가지 유형별 맞춤 전략
블루라이트와 멜라토닌
취침 환경에서 아기에게 영향을 미치는 감각 자극은 다양합니다. 조명, 소음, 촉감, 온도. 이런 것들도 분명 수면에 영향을 줍니다. 형광등이 너무 밝거나, 창밖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거나, 이불이 불편하면 잠들기 어렵죠. 하지만 스크린은 차원이 다른 자극을 줍니다.
밝은 조명도 수면을 방해하지만, 끄면 효과가 바로 사라집니다.
시끄러운 소리도 방해하지만, 조용해지면 진정됩니다.
불편한 촉감도 문제지만, 바꿔주면 편안해집니다.
| 일반 감각 자극 | 스크린 |
|---|---|
| 환경 조정 가능 | 켜면 무조건 노출 |
| 점진적 진정 가능 | 켜는 순간 각성 |
| 멜라토닌과 무관 | 멜라토닌 직접 억제 |
| 효과 즉시 종료 | 꺼도 2-3시간 지속 |
하지만 스크린은 꺼도 끝이 아닙니다. 블루라이트가 송과선에 신호를 보내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는데, 이 효과가 2-3시간 지속됩니다. 아기의 뇌는 스크린을 차단한 한참 뒤까지도 각성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왜 스크린이 이렇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그 이유는 블루라이트가 우리 뇌의 생체시계 중추에 직접 신호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스크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파장 450-480nm)는 우리 망막에 있는 특수한 세포, ipRGC를 자극합니다. 이 세포는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밝기를 감지해서 뇌의 생체시계 중추인 시교차상핵(SCN)에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낮이 언제인지 알려주는 신호죠.
이 신호를 받은 SCN은 송과선에 멜라토닌 분비를 멈추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우리 몸은 각성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의식적 통제와 무관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졸려도, 블루라이트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생리학적 반응은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더 심각한 건 지속 시간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단 10분의 블루라이트 노출도 2-3시간 동안 멜라토닌 억제 효과가 지속됩니다.
저녁 7시에 15분 스크린을 봤다면? 9시에 재우려고 해도 아기의 뇌는 여전히 낮이라고 인식합니다. 스크린을 끄고 조명을 낮추고 조용히 해도, 송과선은 아직 멜라토닌을 충분히 분비하지 않습니다. 피곤한데 잠들 수 없는, 괴로운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블루라이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화면의 빠른 전환과 변화는 뇌간의 망상체를 활성화시킵니다. 각성 시스템이 켜지는 거죠. 게다가 재미있는 콘텐츠는 도파민 보상회로까지 자극합니다. 더 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깁니다.
결과적으로 교육용 콘텐츠라고 해도, 잔잔한 영상이라고 해도, 저녁 시간 스크린은 문제가 됩니다. 콘텐츠의 영향보다 스크린이라는 하드웨어의 영향이 더 큰 영향을 끼치니까요.
스크린 제거와 수면 개선 (2024)
2024년 10월, JAMA Pediatrics에 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연구팀이 수행한 “Bedtime Boost” 연구입니다.
참가자: 105가정 (16-30개월 유아)
- 평균 월령 23.7개월
- 취침 전 1시간에 주 3일 이상 10분이상 스크린 사용 중인 가정
3개 그룹 비교 (무작위 배정)
- PASTI 그룹: 스크린 제거 – 대체 활동 제공
- BB only 그룹: 대체 활동만 제공 (스크린 언급 없음)
- NI 그룹: 평소대로 (아무 개입 없음)
기간: 7주
측정 방법:
- 액티그래프 (발목 착용, 객관적 수면 측정)
- 부모 일지
- 수면 효율성, 야간 각성, 낮잠 시간 등
이 연구는 무작위 대조 실험(RCT)으로 스크린 제거 효과를 검증하였습니다. 이전 연구들은 관찰 연구였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었지만, 이 연구는 무작위로 그룹을 나누고, 한 그룹만 스크린을 제거해서 비교했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었죠.
스크린 없는 저녁 시간
연구팀은 저녁시간 스크린 제거를 가정내에서 해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좋다고 한들, 현실에서 실행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결과는 예상보다 좋았습니다. 105가정 중 104가정이 7주 프로그램을 끝까지 완료했습니다. 중간에 포기한 가정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죠. 스크린 제거 그룹의 94%가 일주일 중 절반 이상을 스크린의 도움 없이 재웠고, 평균적으로 89%가 스크린의 도움 없이 저녁시간을 지냈습니다.
부모들도 도저히 못 버티겠다는 반응보다는 스크린 제거도 할 만하다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스크린 제거 그룹은 평균 13분 정도 사용이 감소했고, 수면의 질이 개선되었습니다. 밤중깸은 유의미하게 줄었습니다. 특히 단순히 대체 활동(책, 퍼즐)만 제공한 그룹보다 스크린을 적극적으로 제거한 그룹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개선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극적인 변화는 아닙니다. 스크린을 줄인 만큼 수면시간이 1시간씩 늘어난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생각보다 해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밤중깸은 유의미하게 줄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계적으로 스크린과 멀어지기
스크린은 수면을 직접적으로 방해합니다. 그리고 저녁시간에 아이에게 스크린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걱정하는 것만큼 어렵지 않다는 걸 연구는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도전해봐야겠죠?
3주에 걸쳐서 천천히 멀어져가요.
- 첫 주 : 취침 2시간 전부터 스크린을 제거. 8시 30분에 재운다면 6시 30분부터는 스크린 없이 보내기.
- 둘째 주 : 3시간 전부터 스크린 제거. 5시 30분부터 스크린 프리. (저녁 시간 포함)
- 셋째 주 : 4시이후 완전 제거.
그리고 스크린으로 대처하던 시간에 다른 놀이를 합시다. 신체놀이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시간이 될 수 있어요. 그 다음 블록이나 퍼즐로 활동 수준을 낮춥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더 조용해지고, 마지막으로 수면 준비를 하는 거죠.
점진적으로 활동 수준을 낮추는 겁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진정하면, 아기의 뇌가 자연스럽게 수면 모드로 전환됩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아기만 스크린을 끊을 수는 없습니다. 엄마 아빠가 옆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아기에게 보지 말라고 하기 어렵죠. 저녁 시간은 온 가족이 스크린 프리 타임을 가져봐요.
마지막으로
스크린의 블루라이트는 멜라토닌을 억제합니다. 10분 노출이 2-3시간의 각성 효과를 냅니다. 94%의 가정이 저녁시간 스크린 제거에 성공했습니다.
처음 3-5일은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면 새로운 패턴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오히려 더 쉬워질 거예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1편: 생체시계는 아기마다 다릅니다
2편: 아기의 생체시계에 맞춰 재우세요
3편: 환경을 조정하세요, 특히 스크린을 제거하세요
이제 마지막 퍼즐 조각이 남았습니다. 일관성입니다. 4편에서 만나요.
참고 문헌
블루라이트와 멜라토닌 연구 : Chang, A. M., et al. (2015). “Evening use of light-emitting eReaders negatively affects sleep, circadian timing, and next-morning alertness“.
감각민감성과 수면 연구 : Vasak, M., et al. (2015). “Sensory processing and sleep in typically developing infants and toddlers“.
연관 수면도구
ⓒ 2025. My Little Dreamer. All rights reserved.
답글 남기기